동네 이야기 · 4분 읽기
파리, 프랑스
르 마레
오스만 재개발을 피한 파리 3·4구의 중세 저택 지구
르 마레는 19세기 파리 대규모 도시 정비에서 살아남은 구역으로, 중세 골목과 귀족 저택이 갤러리·편집숍·유대인 식당가와 같은 블록에 공존한다.
19세기 오스만 재개발에서 살아남은 중세 건축물이 기반을 이루고, 그 위에 20세기 유대인 이민자 공동체, 1980년대 LGBTQ+ 커뮤니티, 갤러리·편집숍 상권이 순차적으로 더해졌다. 다른 파리 구역과 달리 한 번의 대규모 재개발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친 기능 전환이 중첩된 결과다.
파리 3·4구에 걸친 르 마레는 17세기 귀족 저택 건물 안에 현대 패션 매장이 들어선 구역이다. 20세기 초 유대인 이민자 공동체의 역사가 뤼 데 로지에 일대에 남아 있고, 1980년대 이후 LGBTQ+ 커뮤니티의 중심 지역이 됐다.
이 동네가 생긴 배경
르 마레라는 이름은 습지를 뜻한다. 12세기 이전 센강 북쪽의 이 저지대는 배수가 안 되는 땅이었고, 수도원과 기사단이 정착하면서 배수 공사가 시작됐다. 귀족들이 저택을 짓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이후다. 1612년 완공된 플라스 데 보주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계획 광장 중 하나로, 붉은 벽돌 건물 36채가 사각형 광장을 둘러싸는 구조다. 앙리 4세가 설계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, 완공 이후 파리 귀족 사교 활동의 중심이었다.
이 광장과 주변 골목이 지금도 원형에 가까운 이유 중 하나는 19세기 오스만 남작의 파리 도시 정비 사업이 르 마레를 상대적으로 비켜갔기 때문이다. 오스만의 재개발로 파리의 많은 중세 골목이 넓은 대로로 교체됐지만, 르 마레는 안뜰을 갖춘 귀족 저택 형식인 오텔 파르티퀼리에와 좁은 골목을 상당수 유지했다. 이 건물들 중 상당수가 현재 박물관이나 문화 기관으로 사용되고 있다.
지금 남아 있는 장면
20세기 초에는 동유럽에서 이주한 유대인 공동체가 뤼 데 로지에 일대에 집중 정착했다. 나치 점령기인 1942년, 이 지역 유대인 상당수가 강제 추방됐고, 그 역사는 거리 곳곳에 표지판으로 기록돼 있다. 전후에도 유대인 공동체 일부가 남아 팔라펠 식당과 제과점을 운영했으며, 이 가게들은 지금도 관광객과 인근 주민이 함께 찾는 장소다.
1980년대 이후 르 마레는 파리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중심 지역이 됐다. 특정 거리 구간에 관련 바와 숍이 집중해 있으며, 파리 프라이드 행진의 주요 동선 중 하나이기도 하다. 같은 시기에 갤러리와 패션 편집숍도 이 구역에 대거 들어섰다. 현재 르 마레는 17세기 귀족 저택 건물 안에 현대 패션 매장이 들어선 구역, 유대인 식당과 성소수자 커뮤니티 공간이 같은 블록에 있는 구역, 사립 갤러리와 공공 박물관이 도보 거리에 놓인 구역이다. 이 세 층위가 동시에 유효한 파리 도심 지역은 많지 않다.
걷다 보면 보이는 것
구역 서쪽 끝에는 조르주 퐁피두 국립예술문화센터가 인접해 있다. 외골격 구조의 이 건물은 르 마레의 중세 건물들과 강한 대비를 이루며, 개관 이후 이 구역의 현대 예술 밀집 성격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. 또한 오텔 드 생테냥 안에는 유대 예술과 역사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어, 이 구역의 유대인 공동체 역사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싶은 방문자에게 참고가 된다.
눈여겨볼 단서
- 오텔 파르티퀼리에 입구 — 대문 안쪽 안뜰(쿠르)이 열려 있을 때 건물 내부 구조를 볼 수 있다
- 뤼 데 로지에의 팔라펠 가게 — 수십 년 된 가게들이 지금도 영업 중이다
- 플라스 데 보주 아케이드 아래 — 비가 와도 광장을 한 바퀴 걸을 수 있는 구조다
- 중세 건물 파사드와 현대 브랜드 간판의 조합 — 르 마레 특유의 건물 재활용 방식이다
동네 노트
읽고 나면 현장에서 더 잘 보이는 단서들
플라스 데 보주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계획 광장이다
1612년 앙리 4세의 지시로 완공된 플라스 데 보주는 동일한 붉은 벽돌 건물 36채가 사각형 광장을 둘러싸는 구조로 건설됐다. 완공 당시 파리 귀족들의 마상 시합과 사교 행사가 열리던 공간이었다.
오스만 재개발은 르 마레를 상대적으로 비켜갔다
19세기 중반 오스만 남작 주도의 파리 도시 정비 사업은 중세 골목을 허물고 넓은 대로를 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. 르 마레는 이 정비 대상에서 대부분 제외됐고, 덕분에 좁은 중세 골목과 귀족 저택 건물이 상당수 남았다.
뤼 데 로지에는 파리의 유대인 이주 역사를 반영하는 거리다
20세기 초 동유럽에서 이주한 유대인들이 뤼 데 로지에 일대에 집중 정착했다. 1942년 나치 점령 시기 이 지역 유대인 상당수가 강제 추방됐고, 지금도 관련 추모 표지판과 유대인 제과점·식당이 이 거리에 남아 있다.
1980년대부터 파리 LGBTQ+ 커뮤니티의 중심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
뤼 생트-크루아-드-라-브르톤리를 중심으로 LGBTQ+ 관련 바, 숍, 서점이 집중해 있다. 파리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주요 동선 중 하나이기도 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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